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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그리고 70년대의 히피 문화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1998년 개봉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다. 헌터 S. 톰슨의 1971년 출판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영화다.


1960년대 중후반, 베트남 전쟁의 계속된 실패로 불안해져가던 당시의 미국에서는, 2,30대를 중심으로 물질 문명이라는 기존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히피'라는 문화가 등장한다. 히피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며, 자신들만의 특유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가졌으며, 마약을 통한 정신세계의 확장과 해방을 추구하는 하나의 문화 운동이었으며, 사회 현상이었다. 


영화는 이런 히피 문화가 와해되어가기 시작하는 1970년대 초반의 미국을 배경으로한다. 주인공 2명또한 약물에 쩔어서 살아가는 히피들이다. 주인공인 기자와 그 전담변호사가 기사를 쓰러 라스베가스에 가서 생긴 일들을 다룬 내용이다. 


사선의 카메라 구도, 붉은 빛을 극도로 강조한 조명, 중간중간 삽입된 듀크(기자)의 초점을 잃은 시선들은 영화를 보는내내 눈이 아프고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내 경우는 이걸 처음볼때 좀 피곤할때 영화를 틀었다가 10분정도 지나서 너무 어지러운 나머지 영화를 꺼버렸었던 기억이 있다.


어지러워서 꺼버리게 만드는 요소이면서도, 영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마약때문에 맛이 가버린 상태의 듀크의 시점들의 묘사는 사실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싶다. 진짜 마약을 해본사람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운 장면들이다. 혹시 술에 심하게 취해서 필름이 뚝뚝 끊겼던 기억이 있다면, 아마 이런 장면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더욱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약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져서 호텔 체크인하다가 쓰러질뻔하는 주인공의 모습.




영화의 중반부, 마약에 한껏 취한 듀크의 독백을 보면 1996년 경을 기점으로 미국사회에 혜성같이 등장하였으나 일련의 히피들로 인한 사건들의 영향으로 1970년도가 들어서며 와해되어가는 히피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오늘밤 왜 그 시절 생각이 나는거지 5년 전이던가? 6년인가 아마 그 때가 내 삶의 전성기였지 60년대 중반의 샌프란시스코야말로 딱 그런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설명할 수도 없고, 어떤 말이나 음악이나 기억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당시의 느낌과 감정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광기가 사방에 도처에서 번뜩엿고 사방에서 불꽃이 튀었다. 사람들은 보편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우리가 정의이고 승리자라는 것이었다. 아마 그게 핵심적인 근거였던 것 같다. 낡고 부정한 것드를 딛고 결국은 승리한다는 믿음. 총과 칼을 사용하지 않아도 대세는 이미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 그때 우리는 화려했던 역사의 파도의 꼭대기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라스베가스 언덕을 올라 서쪽을 보면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최고조에 달했던 그 파도가 이제 깨지고 부서져 썰물져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을.



히피는 1960년대 중후반 당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사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학생운동이나 청년운동과 달리 무대응 무저항의 원칙으로 행동하는 이들은 마치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집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1970년대가 들어서며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사회에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는 마약들로 인한 사회문제들, 찰스 맨슨같은 히피 범죄자들의 등장으로 히피에 대한 인식은 변하게된다. 히피 운동이 사회 변혁을 일으킬것이라 생각했던 운동권들조차 히피에게서 등을 돌리게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LSD의 구세주라 불리우는 티모시 리어리가 히피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마약복용을 통한 정신세계의 확장'을 설교하면서도 자신의 신봉자들에게 단 한번도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히피들은 불쌍한 마약 중독자들이며 마약을 통해 평화와 지혜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실패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실패담이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는 말은, 히피들을 어지럽던 미국사회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그시대를 살아가던 인물들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